믿음은 과거나 미래의 모습이 아닌 바로 현재 나타나는 실상...
믿음의 중요한 조건은 바로 '현재적인 고백'이다
믿음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믿음은 온전히 현재다.
현재 주님의 말씀을 통해 받아들이고 현재에 있는 것으로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나사로의 죽음과 마리아와 마르다의 신앙을 살펴보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의지하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다.
그가 죽은지 나흘이 돼 썩은 냄새가 났을 때 예수님께서 오셨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다는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어려움 앞에
직면하였다.
그 상황은 바로 '현재'였다.
절망이 칠흑같이 그들의 가정을 억눌렀다.
마라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주여 ! 나흘 전에 오셨더라면 우리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고 말했으며,
"우리 오라버니가 장차 부활의 날에 주님 강림하실 때 부활할 것을 믿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금 현재 자신들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나흘 전 과거의
예수님과 장차 부활의 날 미래의 예수님만을 인정하고 현재의 절망을 해결할
수 있는 분으로 믿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그들을 강권적으로 나사로의 무덤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무덤을 막고 있는 돌문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마리아와 마르다는 "주여,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말하노니 지금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과거의 것, 미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온전히 현재형이다.
믿음은 현재 믿는 것이다.
바로 지금 믿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과거에 믿었던 것을 가지고 , 미래에 될 일을 믿는 것을 통해서도 역사하지
않으신다.
믿음은 언제나 바로 지금 이 순간이어야 하며 현재이다.
나흘 전에 예수님을 믿었던 것으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미래에 부활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도 현재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믿음으로 무덤 문을 옮겨 놓자마자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통해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셨고 이미 썩어버린 그의 육신을 새롭게
하셨다.
그러므로 믿어야 하는 순간은 바로 지금이며, 어제도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이다.
믿음은 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하다.
깊은 터널 속에선 리디오도 들을 수 없고 내비게이션도 작동이 안된다.
세상과 단절된 느낌마저든다.
차로 터널을 지날 땐 몇 가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첫째, 유리창을 닫아야 한다.
터널 속은 차량 매연으로 오염돼 더러운 곳이다.
콧속이 시커멓게 되고 웃이 더러워진다.
세상 터널을 통과할 땐 오염된 문을 닫고 오직 주님께만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둘째, 라이트를 켜야 한다.
모든 터널 입구에는 '라이트를 켜시오'라고 쓰여 있다.
어두운 터널 같은 세상을 지날 땐 빛 되신 그리스도의 불을 밝혀야 한다.
셌째, 갓길 운행은 금지다. 추월도 금지다.
터널안 차선에는 점선이 없다.
모두 추월 금지인 '실선'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푯대이신 주님만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끝으로 터널 속에선 멈추면 안된다.
빠른 속도로 차들이 달리기 때문에 중간에 서는 것은 사고를 차초하는 일이다.
믿음도 멈추면 안된다.
비행기도 가다 서면 추락한다.
터널은 동굴이 아니기에 막혀있지 않다.
뚫려 있다.
그러므로 계속 멈추지 말고 바로 지금 현재에도 달려야 한다.
하나님은 현재의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며, 산 자의 하나님이시고, 현재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성경은 말한다.(히 11:1)
과거의 상이나 미래의 상이 아니라 바로 현재의 모습이 '실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적인 믿음의 고백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