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는 16세기 독알의 종교개혁자로서 부패한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여
오늘날의 개신교를 탄생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 루터의 생애와 헌신
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슬레벤 에서광부인 아버지 '한스 루터'와
어머니' 마가레테 루터 '사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광부로 성공하여 작은 광산의 소유주가 되어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키려고 루터를 도회지에 있는 학교로 보내 공부하게 하였다.
루터는 1501년에 독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유명한 대학중의 하나인 에르푸르트
대학에 입학하였고 대학원까지 다녀 문학 석사가 되었다.
그 때만해도 이 같은 학력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루터의 부모는
루터가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루터는 1505년 7월 2일에 부모님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무서운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동행하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즉사하는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께 "저를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라고 서원 기도를 하였다.
그해 7월 17일 루터는 법학 공부를 중단하고 에르푸르트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개혁파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루터는 엄격한 신앙수련을 받은 후 1507년에 신부로 임명되었다.
♧ 루터의 종교개혁
루터는 신부로 활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활동했다. 그의 나이 27세되던 1510년에는 당시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로마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여행은 루터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애냐하면 그곳 성직자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았고 참회자들의 무식한 모습과
무질서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루터는 율법에 온전히 복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로마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는 더욱 괴로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 후 루터는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예수님이 고난당하시던
빌라도의 계단을 올라가게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마암아 살리라"(합 2:4)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평안을 되찾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루터는 다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즈음 독일에는 타락한 종교행위가 만연되고 있었다.
면죄부 판매는 루터의 마음을 크게 격동시켰다.
면죄부 판매자들은 면죄부를 구입하면 무조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는
그릇된 선전을 하고 이었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자기가 교수로 있던 비덴베르크 대학의 성 교회
정문에 95개조의 항의문 을 붙여놓고 비성경적으로 타락한 종교행위에
대하여 항의 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는데 오늘날 개신교회에서는
루터가 이 항의문을 붙인 날인 19월 31일을 종교개혁일로 지키고 있다.
루터는 처음부터 부패한 로마 카톨릭을 정화하려는 단순한 의도로 개혁을
시작했으나 개혁 운동이 점차 전 유럽에까지 확산되었다.
그러자 로마 카톨릭에서는 1521년 1월 3일 루터를 파문하였다.
이로써 루터는 로마 카톨릭과의 인연을 완전히 단절하고 개신교를 탄생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 루터의 신앙과 업적
루터는 종교적 감수성이 예민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때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자신을 무척 불안해하였고 심지어 공의의
하나님을 미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신학 교수로서 시편과 로마서 등을
연구하면서부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인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어 평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좋으신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부터다.
그 후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은 영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루터는 로마 교황청에서 파문을 당한 후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성경을 원전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 국민의
언어와 삶과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비텐베르크로 다시 돌아가활동하며 "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를
비롯하여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였으며 어떤 것은 스스로 작곡도 하였으며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도 내 놓았다.
루터는 십자가를 통한 영적이고 내면적인 신앙을 소유한 자로서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인정하였다. 당시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혼란했던 독일에서
많은 핍박과 환란을 당했지만 결코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굽히지 않았다.
로마 황제나 독일의 황제 등 누구 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양심을 따라 살다가 1546년 2월 18일 63세 나이로
주님 품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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