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 ...
믿음이란 오직 하나님 주신 말씀 위에 온전히 서는 것 ...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이다.
믿음은 합리적인 생각이나 계량적인 연구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이처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큰 낭패와 시험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기독교의 신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동정녀 탄생이나 에수님의 부활과 승천도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설명하여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그러므로 믿음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위에 온전히
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무조건 말씀을 의지하고 그 말씀 위에 서야만 믿을 수
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할 일은 계산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이다. 계산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라고
말했고, 청교도의 사상가 토마스 왓슨은 "이성이 걸어갈 수 없는 곳에서 믿음은
헤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대의 교부 터툴리안은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기에 그러므로 나는 믿는다"라고
고백했으며, 철학자요 수학자인 파스칼 역시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과학자의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믿는 자의 하나님이다.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믿음이란 합리적 생각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 위에 서는 것이다.
믿음은 느낌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느낌이 항상 변한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평안할 때도 있고, 불안할 때도 있으며
그리고 가슴이 떨릴 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의 기분대로 사물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기분이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변화이지 기분 때문에 환경이나 상황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마음의 느낌을 의지해서는 결코 안된다.
믿음이란 말씀 위에 온전히 서서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믿음은 감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극복하는 것이지 감각에 따라서 믿음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된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모시고 죽은 자신들의 오리비 나사로의 무덤가에
갔을 때, 이미 나사로는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나 돼 썩은 냄새가 났다.
눈으로 보아도 틀림없이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코로 냄새를 맡아 보아도 썩은
냄새가 났다.사강이든 후각이든 감각에 의지해 생각하면 죽은 나사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각에 의지하지 말고 믿음에 의지하라고 말씀으로 명하셨다.
"마르다여,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믿음이란 감각이 아니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죽응 것을 눈으로 보고도 "살아날 것을 믿으라 !" 이미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데도
불구하고 "살아날 것을 믿으라 !" 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감각을 극복하는 것이지 감각을 따라 인지된 상태에
의지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이야기다.
독일에서는 노래를 잘하는 학생들은 남의 집 앞에서 노래를 불러 돈을 받는 관습이
있었다.
어느 날 루터가 부잣집 창문 아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시작하지마자 체격이 크고 무섭게 생긴 남자가 문을 열고 뛰어
나왔다.
루터는 그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주먹질이라도 할 줄 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나이는 계속 쫓아왔고 결국 붙잡혔다.
공포에 벌벌 떨고 있는 루터에게 그 사람은 주먹이 아닌 돈 뭉치를 내밀었다.
장학금을 주려는 따뜻한 마음의 자선가였던 것이다.
루터는 그때를 회고하며 "두려움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만사가 모두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차 있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감사로 넘치고 하나님의
손길이 보인다" 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상황을 느낌이나 감각이 아닌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의
눈으로 보게 되면, 고난조차도 우리를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좋은 일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수레로 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