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1 ...
생각과 마음의 근육 단련해 회복탄력성 길러야 ...
일본의 유명 전자회사 파나소닉의 모기업인 마쓰시타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일본 최고의 공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한 학생은 모교에서 마련해 준
기회들을 거절하고 마쓰시타 회사의 입사 시험에 응모했다.
그러나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빠져 있었다.
수치심과 분노에 괴로워 하던 학생은 그만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전보가 한 장 날아왔다.
입사시험의 수석 합격자인데 전산 처리에 문제가 생겨 누락됐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회였다.
회사 인사부의 책임자도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그룹의 총수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귀에 전해 졌을 때,
그의 반응은 전혀 엉뚱했다.
"이 학생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가 이 학생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정도의 좌절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봐서 그 학생의 심리적 자질이 형편없으며,
그런 심리적 자질로 회사의 중요한 자리에서 좌절을 만나게 될 경우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처럼 다분히 충동적이고 비극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 분명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체지방이 빠지고 근육량이 늘어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 된다.
그렇다면 생각과 마음에도 근육이 있을까 ?
생각과 그 생각을 담는 그릇인 마음의 근육도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마음의 근육이 존재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단단해진다.
마음의 근육량이 많으면 어떤 시련을 겪어도 쉬이 좌절하지 않고, 고통스런 순간에도
금방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살 수 있다.
그런 유연한 능력과 힘이 바로 '회복 탄력성'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유태인들이 자녀교육을 위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작은 유태인' 시리즈 중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몸집이 아주 작은 유태인이 알래스카의 벌목장에 투입됐다.
작업반장은 매사에 자신만만한 작은 유태인을 혼내주려고 큰 도끼를 주며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목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유태인은 능숙한 솜씨로 거목들을 거뜬히 넘어뜨렸다.
기골이 장대한 일꾼들보다 훨씬 일을 잘하는 그에게 작업반장이 물었다.
"벌목솜씨가 매우 훌륭하군,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웠는가"
그러자 일꾼은 "사하라 정글에서 배웠습니다"고 대답했다.
작업반장이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다.
"사하라는 정글이 아니라 사막이지 않은가 ?"
순간 일꾼은 서슴없이 '원래는 정글이었는데 내가 나무를 몽땅 잘라내는 바람에
사막으로 변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것이 유태인의 정신이다.
유태인들은 '용감한 실패'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엄청난 거목이 아닌 작은 소나무 앞에서도 너무 쉽게 좌절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로 부활승천하시며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2~33)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라고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세상을 이기셨다.
현재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자.
날마다 언론을 통해 접하는 뉴스들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험난하고 시끄러운 세상은 우리 마음의 근육을 자꾸 경직되거나
긴장하게 만든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작은 고난과 실패에도 습관처럼 쉽게 패배를
시인하고 주저앉아 신세한탄처럼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울하고 힘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쉬울까 ?
아니면 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 쉬울까 ?
세상보다는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까 ?
우리는 스스로 세상을 바꿔 인생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담대하게 세상과
대결해 승리하신 예수님을 믿어 기쁨과 평안과 축복을 얻어 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