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은사

온유 ...

에 스더 2014. 5. 4. 17:19

경에서 '온유함'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모세이다.

모세를 가리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씀한다.(민 12:3)

이 말씀이 주어진 상황을 통해 온유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모세는 미라암과 아론의 비방과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들의 교만한 태도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모세는 백성들이 자신을 원망할 때 취했던 태도와 같이 여기서도 침묵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출 16:2~4)

모세는 자신을 변호하거나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린다.

이러한 모습이 모세의 온유함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온유함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모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서 실수와 연약함을 가진 지도자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며, 실수가 없으신 완전한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는 한 혈통이고 본질적으로는 안개와 같이 허무한

피조물인 유대인들의 고발에도, 그리고 한 작은 지역의 총리에 불과한 본디오 빌라도의 심문에도

침묵하시며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겸허히 받아들이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데 모든 마음을 집중하셨다.

(요 17:4)

예수님과 모세의 온유함은 겸손함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

모세는 애굽과 광야에서 받았던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을 배웠고,

예수님께서는 본래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시다.(마 11:29)

하나님의 종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성품이 바로 온유이다.

그렇지만 교만과 혈기로 가득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겸손과 온유로

감당하는 것은 어렵다.

사도 바울이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했던

것이다.(골 1:29)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의 편지에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 적을 수 있었다.(고전 4:21)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과 싸우는 방법도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다.(롬 12:21)

성경은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너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시 18: 35)라고 말씀한다.

온유와 겸손의 관계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가 온유함으로 자신과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세상으로 인해, 혹은 사명으로 인해 마음이 괴롭고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직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닥치는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온유와 겸손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마 11:29)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엡 4:2)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겸손과 온유로 열매 맺을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셨다.(히5:8)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순종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순종은 온유한 자가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이다.

이전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 삶에 풍성히 맺힐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받는다 고 말씀한다.(마 5:5)

땅은 전쟁에서 적을 이겨야  얻을 수 잇는 전리품이다.

겸손과 온유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된다.

온유함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길은 우리의 강한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갈 2:30)

우리가 온유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이웃을 용납하며,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